삶의 아이러니에서 시작된 작업들 아티스트 이올
2025-01-01 14:00
이올 작가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획일화되는 인간상에 대한 이야기를 ‘첫돌’이라는 주제로 작업해왔다. 마땅히 축복받아야 할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는 첫돌과 획일화된 인간상이라는, 어떻게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이 작업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이 작업의 시발점은 저의 첫돌 사진이에요. 아버지가 7남매 중 외아들이세요. 제가 89년생인데 집안 분위기나 시기적으로 남아 선호 사상이 있었어요. 제가 아들이길 바랐는데, 첫째 딸로 태어난 거죠. 그래서인지 제 첫돌 사진을 보면 곤룡포를 입고 있어요. 첫돌 기념사진은 항상 이렇게 앉아서 찍거든요.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거의 이 방식으로 찍는데, 실제로 레퍼런스를 찾아보면 울고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불편하고 힘든데, 나를 위한 거라는 거죠(웃음). 그 사진을 어렸을 때부터 쭉 보고 자라면서 100% 타자성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고, 그게 무척이나 아이러니했죠.”
그는 이렇듯 사회 시스템 속에서 타자성에 의해 고유성을 잃어가며 획일화되어 가는 인간상을 포착해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작업은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당시에는 이를 ‘사육’이라는 주제로 풀어냈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제가 ‘사육’됐다고 생각했고, 2020년까지 이를 꾸준히 회화나 설치 작업으로 이야기했어요. 초반에는 오리의 형상으로 작업했어요. 오리는 태어나서 각인 현상으로 부모를 졸졸 쫓아다니잖아요. 그런 지점이 저의 삶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고, 이후 저의 돌 사진이나 가족들의 어린 시절 사진 등을 활용하면서 사육된 나와 대물림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죠. 그러다 2023년부터는 ‘사육’이라는 단어를 빼고 ‘첫돌’을 주제로 획일화되어 가는 인간상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이 작업의 시발점은 저의 첫돌 사진이에요. 아버지가 7남매 중 외아들이세요. 제가 89년생인데 집안 분위기나 시기적으로 남아 선호 사상이 있었어요. 제가 아들이길 바랐는데, 첫째 딸로 태어난 거죠. 그래서인지 제 첫돌 사진을 보면 곤룡포를 입고 있어요. 첫돌 기념사진은 항상 이렇게 앉아서 찍거든요.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거의 이 방식으로 찍는데, 실제로 레퍼런스를 찾아보면 울고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불편하고 힘든데, 나를 위한 거라는 거죠(웃음). 그 사진을 어렸을 때부터 쭉 보고 자라면서 100% 타자성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고, 그게 무척이나 아이러니했죠.”
그는 이렇듯 사회 시스템 속에서 타자성에 의해 고유성을 잃어가며 획일화되어 가는 인간상을 포착해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작업은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당시에는 이를 ‘사육’이라는 주제로 풀어냈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제가 ‘사육’됐다고 생각했고, 2020년까지 이를 꾸준히 회화나 설치 작업으로 이야기했어요. 초반에는 오리의 형상으로 작업했어요. 오리는 태어나서 각인 현상으로 부모를 졸졸 쫓아다니잖아요. 그런 지점이 저의 삶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고, 이후 저의 돌 사진이나 가족들의 어린 시절 사진 등을 활용하면서 사육된 나와 대물림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죠. 그러다 2023년부터는 ‘사육’이라는 단어를 빼고 ‘첫돌’을 주제로 획일화되어 가는 인간상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첫돌, 사육 레시피의 정점
이올 작가는 지난 2022년 ‘Recipes of Breeding: 사육의 레시피’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몇 차례 개최했다. 앞서 이야기한 작업의 맥락, 즉 사회적 굴레 안에서 타인에 의해 프로그래밍 되어가는 인간의 성장과정을 ‘사육 레시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첫돌 잔치에서 이러한 사육 레시피의 정점을 발견하게 된다.“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저의 첫돌 사진이 시발점이었다면, 첫돌 잔치가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모든 인간이 사회로 진입하는 첫 잔치인데, 막상 그 안에서 나라는 존재는 배제되어 있는 것 같았죠. 전통적으로 돌잡이라는 것을 하는데, 사실 몇 가지 수가 안 되는 것에 나의 인생을 점치는 행위잖아요. 그런 것들도 굉장히 시스템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내 인생의 길이 어떤 패턴에 맞추어 정해져 있고, 사람들은 어쩌면 그런 거에서 안정감을 찾기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특히 현대에서는 아이를 시스템에 맞추어 키우는 게 굉장히 최적화됐다고 생각해요. 태어나 예방접종과 출생 신고를 하는 이런 과정이 사회로 진입하는 짜여있는 패턴처럼 여겨지고, 요즘 블로그나 맘 카페 같은 곳에 아이가 태어난 후 개월 수에 따라 꼭 이것만 먹어야 한다는 레시피가 잘 나와 있거든요. 그런 표부터가 시스템화된 성장 과정을 표현한다고 생각해서 이를 작업으로도 표현했어요.
조금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2022년도에 ‘우량아 선발대회’라는 작업을 했어요. 그 작업도 같은 맥락인데요.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가장 통통하고 잘 돼 있는 것들을 재단하고 규율하면서 우량아를 선발했잖아요. 이런 게 굉장한 사회의 폭력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게 부모일 수도 있고 사회일 수도 있지만, 어떤 타인이 개인에게 그런 폭력성을 부여하고 그거에 맞춰서 살아가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나약한 개인의 모습이 가장 순수한 본연의 인간의 모습이면서도 지금도 나 같은, 아직도 우리가 아이로 살아가고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어요.”
복, 개념의 확장
이올 작가는 최근 ‘복’이라는 또 다른 주제에 관심이 생겼다. 앞서 언급한 ‘첫돌’과 연결되기가 어려운 주제 같지만, 알고 보면 이 역시 그가 지속하고 있는 문제의식과 질문이 확장된 개념이다. 그는 한국 사회 안에서 ‘복’이라는 것이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도 삶 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 역시 타자성이 강하게 작용하는 부분이라 말한다.“한국 사람은 태어났을 때부터 복을 빌고 죽을 때까지 복을 비는 민족이래요. 이게 지리적 환경 영향이 큰데 대국에 끼어 있어서 전쟁도 많았고 항상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이 뿌리 깊게 있는 민족인 것 같아요. 어떤 존재에 의지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복이라는 게 굉장히 타자성이 강하잖아요. 인생이 자의로 흐르는 것 같지만 절대 자의로 흐를 수 없거든요. 돌잔치에서 돌잡이를 하는 행위 같은 것도 복을 기원하는 행위고, 그런 게 재밌는 주제로 다가와서 복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요즘 부적을 쓰고 있거든요. 경면주사라는 돌이 있어요. 예전부터 염원한 돌로 알려져 있는데, 이걸 갈아서 부적을 써요. 종이도 궤양지라는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종이에요. 보면 정성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 정성 안에서 기운이 웃돈다고 여겼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내 공과 정성을 들이면서 불안을 해소하는 과정인 거죠. 그런 것을 이제 종교적으로 발휘한 건데, 이런 기복적인 삶을 현대미술로 끌어와 메시지를 던져보고 싶어서 요즘 실험하고 있어요.”
그런 그가 현재 가장 기원하는 복은 무엇일까. 이를 묻는 질문에 이올 작가는 ‘무탈’이라고 답한다. 실제 그는 작업을 이어가며 ‘복이라는 게 정말 있는 것일까? 실재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고 했다. 때문에 그는 말한다. 그저 이렇게 하루하루 흘러가는 게 인생이며, 그 안에서 무탈한 것이야말로 진짜 복이라고.
정체성, 영감의 뿌리
이올 작가는 “영감을 어디서 얻으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쉽게 답하지 못한다. 타 예술 작품을 보거나, 여행 혹은 독서를 하는 등 특정한 행위를 통해 번뜩이는 작업 영감을 받는 타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와 인터뷰를 하면서 어쩌면 이올 작가에게 영감이란 그만의 정체성, 살아온 삶의 과정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했다. 실제 이올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로부터 귀중한 작업의 씨앗을 찾았으며, 이를 지속해서 발화시키고 있다. 또한 그의 부모님 역시 동양화를 그리셨다고 한다. 자연스레 어린 시절부터 예술을 가까이 접하는 환경에 있을 수밖에 없었고, 이 모든 게 아마 영감의 원천이 될 수밖에 없었을 거다.“과연 우리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림을 그렸을까, 하는 근본적인 인생 고민을 어렸을 때부터 많이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다른 부모님 밑에 태어났어도 했을 것 같지만,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을 때 왜 나는 우리 집에 태어나서 돈도 못 버는 이 직업을 선택했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웃음). 또 어머니 쪽이 뼈대가 깊은 기독교 집안이에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종교의 억압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런 부분이 이렇게 다른 방향으로 분출되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렸을 때부터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었던 거 같거든요. 사실 나는 항상 틀에 갇혀 있고, 여기서 못 나가는 게 불만이었어요. 때문에 그에 대한 반항적인 생각으로 작업을 해왔거든요. 그래서 전시장을 철장으로 우리처럼 박고 그랬어요. 근데 생각해 보니 내 철장이 한 번도 잠겨있었던 적은 없는 거예요. 항상 열려 있었는데 용기가 없어 못 나간 거죠. 그거를 깨닫는 순간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사육’이라는 단어를 버리게 됐어요. 그게 한 걸음의 도약과 같았죠. 그 다음 ‘첫돌’ ‘복’ 이런 키워드로 옮겨지게 되었고요.”
작업, 죽을 때까지 만족할 수 없는
이올 작가에게 2023년은 작업적으로 특히나 중요한 해였다. 시각 예술가로서 지녀온 고민을 풀어내고자 또 다른 도전을 시도했기 때문이다.“‘사육’이라는 단어로 계속 작업하면서 ‘나는 시각 예술가인데, 작업이 단어로 먼저 다가온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게 작가로서 큰 고민이었죠. 이거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표현할까. 그러니까 딱 그림을 보고 이 모든 게 아우라에 의해 감정으로 딱 느껴지면 좋겠는데, 이렇게 말로 구구절절 설명하게 되는 게 아쉬운 거죠. 제가 생각할 때 좋은 작업은 그 두 가지가 완벽하게 50:50으로 이루어져 있는 작업인 것 같아요. 그래서 ‘사육’이라는 단어를 빼려고 노력했어요. 제가 똑같은 이미지들을 반복적으로 생산하고 있지만, 그 안에 고유성이 있잖아요. 이 하나하나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작업들을 통해서 내가 획일화되고 사육되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해 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근데 이제 전시를 열고 정리하다 보면 ‘아니야 더 좋은 방향성이 있을 것 같은데’ 후회하고 그래서 또 다른 걸 실험하는, 이것의 반복인 것 같아요. 또 다른 고민은, 시각 예술가로서 설치나 영상 작업 등 모든 활동을 하고 있는데 어쨌든 페인팅은 이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빠질 수 없는 한 부류가 된 걸 부정할 수 없어요. 저는 또 그림쟁이여서 페인팅 자체를 포기할 순 없거든요. 그 페인팅 안에서 그래도 내가 적절한 대중성을 갖추는 것 또한 작가로서의 중요한 전략 중 하나인 것 같아서 고민이 있어요. 사실 동료나 선배들한테 이런 얘기들을 하면 또 이 희망적으로 말씀하시는 게 ‘그게 정상이야, 자기 작업에 만족하면 이제 끝인 거야’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아, 죽을 때까지 작업에 만족할 수 없겠구나 싶어요(웃음).”

writer
홍길동 작가
‘사육’이라는 단어로 계속 작업하면서 ‘나는 시각 예술가인데, 작업이 단어로 먼저 다가온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게 작가로서 큰 고민이었죠. 이거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표현할까. 그러니까 딱 그림을 보고 이 모든 게 아우라에 의해 감정으로 딱 느껴지면 좋겠는데,